오늘은 정보도 분석도 아닌, 그냥 내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마흔여섯이 된 지금, 돌아보면 두 개의 시간이 있다. 20년 동안 해온 주식, 그리고 1년 남짓 파고든 AI. 햇수는 스무 배 차이인데, 달라진 건 오히려 반대다.

1. 주식 20년 — 길었지만 옅었던 시간

언제부터 투자를 했나 따져봤다. 대학을 졸업하고부터였나 싶었는데, 아니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부터 했으니 스물여섯, 일곱쯤이다. 얼추 20년이다.

밤늦게 책상에 앉아 차트를 보는 모습 20년. 햇수로만 치면 베테랑이다.

그런데 바뀐 게 없다. 그때도 잃었고, 지금도 잃는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시간은 길었는데 밀도가 낮았다. 했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들여다보고, 기록하고, 복기한 시간은 많지 않았다.

요즘은 그 밀도를 많이 올렸다. 매매를 기록하고, 숫자를 맞춰보고, 왜 샀는지 적어둔다. 덕분에 예전보다는 조금 더 유연하게 대처하게 된 것 같다. 물론 해온 시간에 비하면 결과는 아직 보잘것없다.

그래도 믿고 또 믿고 가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본다. 매번 새로운 방법을 찾아 나서는 것 자체가 좋은 일이다. 고민하고 뭐라도 해야 발전이 있다. 아무것도 안 하면 발전도 없다.

포기하지 말고, 계속 방법을 찾아가 보자. — 나한테 하는 말이다.

2. AI 1년 — 짧았지만 진했던 시간

AI를 제대로 써보고 싶어진 건 작년부터다. 1년 반 남짓, 한눈에 정리하면 이렇다.

시기써본 것한 줄 소감
2025년 초ChatGPT대답은 잘하는데 원하는 결과물은 안 나왔다
2025년 가을젠스파크 (PPT)레이아웃에 감동, 내용은 부실
2025년 가을젠스파크 + Apple Watch (회의록)러시아어 회의까지 정리해 준 ‘초월 회의록’
2025년 가을퍼플렉시티, ChatGPT 이미지깊이 있는 검색은 좋았지만 생활엔 안 붙었다
2026년 초맥북 + 로컬 LLM (Gemma 4)세컨드 브레인 도전, 한 달 작업을 날렸다
2026년팀 대시보드 → 내 홈페이지드디어 일이 줄고, 재미가 붙었다

써보고 싶어도 쓸 데가 없던 시절

작년 1월만 해도 ChatGPT가 있다니 써보긴 했는데 한계가 뚜렷했다. 물어보면 대답은 잘한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결과물은 안 나왔다. 내 입맛에 맞게 튜닝한다는 건 엄두도 안 났고, 속도도 느렸다.

첫 감동 — 사업계획 PPT

상황이 바뀌었다고 처음 느낀 건 작년 8~10월쯤이다. 사업계획을 만들려고 **젠스파크(Genspark)**로 PPT를 만들어 봤는데, 너무 잘 만들어 줘서 감동했다. 또 감동했다.

노트북 화면 위에 정돈된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 레이아웃과 가독성, 내가 제일 약한 부분을 AI가 채워줬다.

나는 레이아웃을 짜고, 거기에 맞춰 예쁘고 가독성 좋게 표현하는 데 약하다. 그걸 잘해주니 껌뻑 죽었다. 내 머릿속에서는 나올 수 없는 장표였다.

물론 맞지 않는 내용도 많았고, 그걸 그대로 들고 얘기하다 뻘쭘해진 적도 몇 번 있다. 내용은 부실했다. 그래도 장표 뼈대만 있으면 나중에 얼마든지 다듬을 수 있으니, 그걸로 충분했다.

두 번째 — 러시아어까지 받아 적는 회의록

어쩌다 Apple Watch의 젠스파크 앱에 녹음기를 연동해 쓸 수 있게 됐는데, 켜놓고 녹음해 보니 신세계였다.

회의 테이블 위 스마트워치와 음성 파형 내가 못 알아듣는 말까지 정리해 주는 회의록.

특히 러시아어로 오간 대화를 번역해 회의록으로 정리해 주는 건 그야말로 ‘초월 회의록’이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까지 해주니까.

다만 녹음은 티가 너무 난다. 상대방이 불편할 수 있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것 같아 지금은 잘 안 쓴다. 그래도 여전히 많이 쓰는 분들이 있을 만큼, 좋은 기능인 건 분명하다.

세 번째 — 퍼플렉시티와 지브리

젠스파크와 퍼플렉시티(Perplexity)는 1년 무료 구독이 가능해서 감사하게 잘 썼다. 퍼플렉시티는 검색이 정말 잘 됐다.

  • 우편번호 찾기처럼 간단한 건 그냥 검색창이 빠르다.
  • 화장실 물때 지우는 법처럼 블로그 몇 개를 뒤져야 하는 건, 그 안의 내용까지 읽고 요약해 주니 훨씬 좋았다.

다만 생활 깊숙이 들여서 쓰진 않았다. 궁금한 게 생길 때만 짧게 짧게 찾아보는 정도였고, 지금은 잘 안 쓴다.

ChatGPT로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도 몇 장 만들어 봤다. 딱 흥미까지였다. 이 무렵의 나는 이랬다. “AI로 이런 게 되는구나, 신기하다. 이걸 잘 써서 나도 돈을 벌고 싶다.” 마음만 가득했다.

올해, 딥다이브 — 그리고 한 달을 날리다

올해 초, 이번엔 제대로 파보자고 마음먹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1. 블로그로 한 편에 500원이라도 벌어보자. (아직 못 벌었다. 안타깝다.)
  2. 너무 힘들고 어려운 회사 일을, AI로 좀 나이스하게 해보자.

좋은 컴퓨터(맥북)를 사고 로컬에 LLM을 깔았다. 마침 Gemma 4가 나왔을 때라 그걸로 시작했다.

노트북 위로 떠오르는 문서와 메모로 이루어진 빛나는 뇌 세컨드 브레인. 말은 멋있는데, 한 번 날려봤다.

쓰다 보니 세컨드 브레인이라는 개념을 알게 됐다. 내 지식을 로컬 AI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자. 그래서 메일을 모아 학습시키기 시작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날아갔다. 한 달 넘게 걸린 작업이었다. 돌아보면 불완전한 머신에 불완전한 코드로 학습을 시켰으니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겉핥기 수준의 답만 나왔고, 데이터가 방대해지면서 느려지기까지 했다.

그래도 남은 게 있다. 노션에 붙여서 회사 할 일 목록이나 거래 내역을 정리할 수 있게 됐고, 무엇보다 이게 다음 단계의 시발점이 됐다.

팀원이 움직이다 — 회사 대시보드

내가 이것저것 하고 있으니, 이런 걸 좋아하는 팀원 한 명도 해보고 싶어졌나 보다. 팀 대시보드를 개발해 보겠다고 해서 “한번 해보자"고 했다. 그 친구가 주도하고 내 아이디어를 보태 회사 대시보드를 만들었다.

창고와 대형 화면 속 구매·재고 대시보드를 함께 보는 팀 엑셀 다운로드가 사라진 자리.

처음 만든 건 구매 자재 수급 소요표다.

  • 엑셀 다운로드가 사라졌다. 담당자마다 전산(SAP)에서 수요 정보를 엑셀로 내려받던 걸 웹으로 옮겼다. 들어가면 바로 보인다.
  • 업체가 직접 입고 일정을 넣는다. 문제 자재는 대시보드가 계산해서 먼저 알려준다.
  • 메일도 거기서 바로 보낸다. 업체마다 수기로 보내던 메일을 한 화면에서 발송한다.
  • 기한 관리가 쉬워졌다. 수요 정보를 바탕으로 단가 인상·인하 기한 같은 걸 챙기기 편해졌다.
  • 보고가 편해졌다. 매월 재고 흐름이 파악되고 입고 예상이 되니 보고 장표 만들기가 수월해졌다.

이 표를 관리 부서에도 전달해 거기서도 늘 확인하게 했다. 업무 효율이 올라가고 팀원들 일이 줄었다. 분위기가 점점 긍정적으로 바뀌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를 위한 보드

그다음엔 나를 위한 것도 만들고 싶어졌다. 그 친구의 대시보드를 벤치마킹해 내 홈페이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직 진행 중이지만, 생각보다 잘 되고 있다.

특히 최근 Claude, ChatGPT(Codex) 같은 프런티어급 AI가 발전하면서 일이 달라졌다. 업무를 개선하고 내 보드를 만드는 게 훨씬 재밌어졌고, 품질도 확 올라갔다.

1년 써보고 알게 된 AI의 진짜 장점

여러 도구를 거치며 느낀 가장 큰 장점은 하나다. AI는 한 번 만든 결과물의 구조를 통째로 쥐고 있다.

한참 일을 진행하다 앞단 로직이 잘못된 걸 발견해 고치면, 그 뒤에 딸린 것들까지 맞춰서 한꺼번에 반영해 준다. 사람이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계산하고 결과물을 만든다. 예쁜 장표도, 회의록도 좋았지만, 결국 나를 바꾼 건 이 부분이었다.

마치며 — 결국 밀도의 문제

적고 보니 두 이야기는 같은 얘기였다.

해 뜨는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는 사람의 뒷모습 결국 계속 걷는 사람이 뭐라도 얻는다.

주식은 20년을 했지만 밀도가 낮아서 달라진 게 별로 없다. AI는 1년 남짓이지만 밀도 높게 부딪혔더니 많은 게 달라졌다. 한 달 작업을 날리기도 했고 회의록 때문에 머쓱해지기도 했지만, 그 과정이 전부 다음 단계의 발판이 됐다.

이제는 AI가 계획을 같이 세우고 손발까지 되어 준다. 이 글에 들어간 이미지도 내가 한 장씩 만든 게 아니라 AI 에이전트에게 맡겨 만들었다. 1년 전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투자도 이렇게 해보려고 한다. 기록하고, 복기하고, 계속 방법을 찾는다.

포기하지 말고, 밀도를 올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