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돈이 있습니다. 바로 ‘내 돈이 아닌 돈’ 입니다. 더 정확히는 — 지인의 돈. 이 글은 짧은 며칠 동안, 가까운 분의 돈을 맡아 주식을 굴려본 한 사람의 후기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돈도 못 벌고, 마음도 졸이고, 관계도 흔들렸습니다. 다행히 이 글의 결말은 “그래도 다행히…” 로 끝납니다. 하지만 다음에 같은 부탁을 받는다면? 저는 정중히 사양할 것 같습니다.
1막. 부탁은 가볍게 옵니다
“주식 안 샀지?~” 모든 일은 그렇게 가볍게 시작됩니다. 카톡 한 줄. 이모티콘 하나. 그리고 어느새 꽤 큰 금액이 제 손에 쥐어져 있습니다. 처음엔 “여기서도 좀 샀거든 ㅋ” 하는 가벼운 농담이었습니다. 같이 사면 같이 응원하고, 떨어지면 같이 위로하는, 가족의 정 같은 동행이었거든요. 적어도, 시작은 그랬습니다.
2막. ‘Fighting!’ 의 함정
NAVER를 절반만 사봤습니다. 매수가 26만 원 대. 첫날 평가손익 마이너스. 답이 돌아옵니다.
“잘했네 ㅎ” 다음 날엔 손실이 좀 더 커집니다. 답이 또 돌아옵니다. “쪼아쪼아 아자아자 fighting” 응원의 카톡은 따뜻합니다. 그런데 차트는 차갑습니다. 종가가 내려갈 때마다 저는 시장보다 카톡 알림에 더 긴장하게 됐습니다. “떨어지면 또 사봐 ㅋ” 별 거 아닌 듯한 한 줄이, 매도 버튼 위에 놓인 손가락을 멈추게 합니다. 남의 돈은 ‘버틸 수 있는 한계’가 다릅니다. 정확히는, 제가 정한 한계가 아니라 — 상대방이 정한 한계입니다.
3막. 갈대는 바람 방향에 맞추어 쉼 없이 흔들립니다
며칠이 지나자 미묘한 변화가 시작됩니다.
“네이버보다 하이닉스가 난 거 아닐까? ㅋ” “당분간은 쉬어야 할 것 같아.” “내일부터 조정 들어가 많이 떨어질 거 같다네.” 분명 처음엔 “마음대로 해” 였습니다. 그런데 옆에서 누군가 말을 흘립니다. 그 말이 그대로 전달됩니다. 종목이 흔들리고, 타이밍이 흔들리고, 마음이 흔들립니다. 문제는 그 정보의 출처가 시장이 아니라 ‘옆 사람’ 이라는 점입니다. 갈대가 그렇게 움직이는 이유는 갈대 본인이 결정한 게 아닙니다. 바람이 결정합니다.
4막. “나는 몰랐어” 와 “언제 사냐”
가장 견디기 어려운 순간은 따로 있습니다. 잃기 시작하면 이런 답이 옵니다.
“나는 몰랐어. 애초부터 힘들다고 했으면 내가 강행 안 했을 사람인데…” 그런데 돈을 입금하시고 며칠 안 되어서는, “어찌 됐는지? 매도가 됐는감? ㅋ” 분명 같은 분의 메시지인데, 한쪽은 ‘몰랐던 사람’ 이고 다른 한쪽은 ‘재촉하는 사람’ 입니다. 그 사이에서 저는 매수·매도 버튼을 누르는 게 아니라, 카톡 답장을 어떻게 보낼지 30분씩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5막. “편한 대로 하시게”
월요일 장을 앞두고, 저는 결심합니다.
“버티는 것도 좋은데, 월요일에 많이 떨어질 것 같아서 어떻게 받아들이실지가 걱정돼요. 조정이 심하게 오면 손실 20~30%도 갈 수 있고, 더 버티다 반토막 되면 어쩌나 싶어서요.” 답이 돌아옵니다. “그럼 편한 대로 하시게. 난 부담 주는 건 싫으니깐.” 그리고 다음 줄. “현금화하면 손실이 큰 거 아냐? 난 돈 입금이 안 된 줄 알고 안 산 줄 알았지 ㅋ” …아. 그것도 모르고 계셨구나. 며칠 동안 캡처로 보내드린 손익 화면은, 사실 ‘아직 사지 않은 상태’ 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던 겁니다. (회피하고 싶은 마음)
6막. 그래도 다행, 그리고 마지막 한 줄
분할 매도를 시작했습니다. 하이닉스 한 주, 네이버 다섯 주. 며칠에 걸쳐 천천히 정리. 다 팔고 보니 약간의 손실. 그래도 시드는 거의 지켰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한 줄이 더 옵니다.
“이달 말까지만 보관해줄 수 있는지? 떨어진 거 한 방 질러서 찾아야지 ㅋ” 저는 싫은 감정을 담아, 답합니다. “다 정리했고, 잔액 알려드릴게요.” 그리고 돌아온 답. “알았어요. 다신 이런 일 없을 겁니다. 미안해요. 마음 상했다면 사과할게요.” …그 한마디로, 며칠간의 무게가 절반쯤 내려갔습니다.
교훈 — 짧지만 비싼 수업
- 남의 돈은 함부로 굴리지 말자. 내 돈이면 -3%가 ‘횡보’ 지만, 남의 돈이면 -3%가 ‘재난’ 입니다.
- 감정만 상합니다. 수익은 “고생했네 ㅋ” 한 줄로 끝나고, 손실은 “좋은 방안을 생각해봐.” 한 줄이 며칠을 짓누릅니다. 보상 구조가 비대칭입니다.
- 돈도 못 법니다. 옆에서 흔드는 갈대 같은 정보 때문에, 평소 내 원칙대로 매매하는 게 불가능했습니다. “내 매매” 가 아니라 “남의 매매를 대신해주는 일” 이 됩니다.
- 좋은 관계도 깨질 수 있습니다. 다행히 “다신 이런 일 없을 겁니다” 라는 마지막 사과가 관계를 살렸습니다. 하지만 다음번엔 그 사과조차 못 받을 수도 있습니다.
마치며
다행히 원만하게 마무리 되었습니다. 약간의 손실은 수업료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초기에 ‘이건 위험하다’ 는 신호를 알아본 것, 그래서 큰 손실 전에 정리할 수 있었던 것 — 그게 가장 큰 복이라 생각합니다.
“어르신, 다음에는 그냥 — 같이 밥이나 먹어요.” — 라고 마음속으로 인사를 건네며, 이 글을 마무리합니다.